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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요화가회

창작글과 음악

이   름 안광섭
작성일 2010-01-27 (수) 07:45
분 류 기타
ㆍ조회: 1734      
IP: 122.xxx.47
눈에보이지않지만 아름답게 방황하는 우리화우들에게 ..
(혹 참고가 될만한 글하나 퍼올립니다
 
그림은...


그려야 그림이다.
보는 것은 그림이 아니다.
그림을 보는 일은 그림 이후의 일이다.

망설임 없이,
휘파람 불며 그려버린… 혹은,
망설이며 더듬다가 그려버린…….

세상 보이는 모양을,
내 안에 감춰진 세상을
그리면 그려지는 대로…….

그림은 사상과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생리의 조합이다.
그림은 이야기의 생산이 아니라 버려지는 이야기이다.
그림은 이미 통용되는 언어(약속)와 설정된 모든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발음해보는 '놀이'의 場이다.

아무렇게나 그려도 그림이다.
畵面내에서 유미, 숭고, 치졸, 긴장 따위를 숨기거나 치장하는
전시언어는 직업의 일이고,
그리는 놀이는 누구나가 그려가는 그 순간에 완성된다.

통용되려는 언어의 창조(작품)는 이미 '예술'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다.
필요성에 따라 움직이는 또 다른 사회활동이다.
그림에서 우리는 '너'에게 완전을 요구하지 못함이다.
따라서 자연성과 자발성은,
그림이라는 形式(역사)이 있는 한 실천원리로서
놀이(그림)의 근본이다.



(2) 우리가 받을 그림교육은...


보는 것과는 달리 그리는 순간에는 어떤 리얼한 아름다움(감각)이 있다.
그저 그리려는 욕망을 허용하는 그림이라는 자유언어는
우리에게 정당한 소비를 약속하는 기쁨의 '놀이터'이다.
가꾸어지거나 가꾸어주는 사랑(휴식)에서,
무엇이 그려지고 어떻게 그려짐은 기쁨의 재료일 뿐이지 중요함이 아니다.
아빠가 사오신 크레파스만으로도 신나는 사실은
앞으로 그려갈, 그려진 현상에 있지 않고 사랑의 재료,
그 자체의 충분한 울림대에 있다.

그림은 약속된 언어에서 이탈된 '놀이'이며,
세상과 '나' 사이의 긴장을 소비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화면에서 미적추구의 한 이념이거나, 이미지의 作爲를 감상하기 이전에
빈 화면, 그 자체를 가지고 있다.
각 개인의 타고난 자유의식은
창조를 위한 형식과 조건에 제한됨이 없이 발현되어야 한다.
사실 '고흐'도 그림을 창작했다하기 보다는
그림의 효용성(치료,놀이)을 충분히 이용한 '나'일 뿐이다.

그림에 美的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주어진 것들을 신나게 늘어놓는 일이다.
정신적인 禪의 상징으로, 그림이 가장 보편적인 집단의 소유가 되는 순간은
본능에 가깝다는 어린이 미술시간에 있었다.
가치, 발전, 이윤…, 문화에 대한 두려움 없이―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속성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속성이겠다.
'놀이'에서 莊重함과 세련됨(작품)은
즐거움 이후에 자유언어를 자꾸 來日로 보내려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는 만큼,
못남과 소박함에 美의 조건을 주는 일은 발랄한 藥이 된다.

그림의 역사(이야기)에서 작품이 축적된 것이 아니라,
'너'가 아무렇게나 그려도 기쁨이도록 재료와 방법이 축적 되었다.
자유언어의 스승은 내적충실에 있으며,
개성은 개발 된다기보다 스스로 조화를 찾아간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받을 그림교육은
질료이든 그림형식이든, 재료가 자유롭게 널려있다는 점일 뿐이다.



(3) 그림은 더듬기의 언어이다


순간의 명랑을 더듬어 보는 일은 그림에서 우선이 되는 사명이다.
그림은 더듬기의 언어이며,
'너'는 더듬거림의 마술사이다.
피조물(자연)과 인간(현존)과 정신(자아)이 처음으로
부딪치는 언어는 더듬거림이며,
이는 그 어떤 형태로 나타나도 새로움이다.

우리의 건강함으로 자유언어(그림)의 흔적이 떨리고 있음은 당연하다.
문지름의 양식, 그 아득한 더듬거림은 '너'의 권리이다.
그 옛날 빈 공간에 形象을 새겨놓음은 道理(권력)가 없었던 생리이듯이,
심심과 문지름과 더듬거림의 흔적들이 '너'와 '나' 사이에서
보다 자유롭도록 회화양식은 자리해야 한다.

그림은 놀이가 끝나는 완성에 意義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과 동시에 소비되는 약속(터)이다.
'나'는 심심할 때 그린다. 봄이 오면 풀들이 저절로 싹트는 것처럼―

그림에는 실패가 없다.
오직 놀았던 시간과 흔적이 있을 뿐이다.
그려진 그 어떤 형태는 이미 소비되어 버려지거나,
'너'(이웃)의 만남으로 거짓성(못남)을 벗어나서 웃음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화면에 선택된 초점도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다가 그만둔 여백은 '나'가 그림에 갖는 여유의 흔적일 것이다.
화면을 꼭꼭 채워가지 않는 힘(자유)은 보는 '너'의 자유(여유)로도 작용된다.

사물과 영상이 화면 안에서 재현된다는 약속은 본래 없었다.
눈과 손은 따로 있지 않는가?
필요하면 몰라도 고민의 시초인 뎃생을 권하지는 못함이다. 되는 형상만큼,
원하는 것은 분명히 '너'의 손에서 그려질 것이다.

복사(모방)도 그림의 원리이다.
북쪽 어디엔가 사는 산타할아버지가 혼자서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하룻밤에 선물을 돌릴 수 없듯이,
그 마음이 복사되어 각지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사랑의 권리이다.
훌륭한 작품(창조)은 거듭 복사될 수 있는 따스함을 속성으로 한다.
놀이에서 '나'의 것이 거리(작품)로 나온 유일한 정당성은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소개에 있다.
복사되지 않는 작품(문화)은 권위이며 우상(권력)이다.
먼 곳에 있는 것은 차갑기만 하다.

단 한 장(억압)의 완성욕구로 스트레스를 갖지 말자.
빈 화면은 많다.
안되면 된 부분만 가위로 오려도 좋고, 오려서 붙여도 좋고,
그래도 안되면 버려도 좋다. 一回性은 그림의 숙명이며 자랑이다.
그렇다고 화면의 非確定이 그렇게 슬픈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은 소비되었고, 모든 넘실대는 시각적 유혹 속에서도
그 모자람은 그 모자람으로,
'너'(이웃)에 대한 그리움으로 충분히 웃음(완성)이 된다.

자유언어(놀이)에서는 누구나가 어린이이다.
어린이와 같은 흔적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 아니라,
△와 □를 놓고 美學을 論하는 것이 정말 웃기는 일이다.



(4) 그림의 宿命이고...


아름다움은 그린다는 행위의 배후에 있다.
직접 그려가는 흔적이 놀이(그림)로서 훨씬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을 확인한다.
자유는 이미 '너'에게 있으며, '너'는 이를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너'는 형체와 색체를 마음껏 가지며, 이렇게 순간에 충실된 자유언어는
보는 '나'와 즐거우면 성과를 다하는 것이다.
그림은 놀이의 순간이며,
'너'의 壁(액자)에서 변화해가는 선택이다.
어수선하고 축소된, 직접적 웃음이 있는, 목적도 없고, 힘들지도 않고,
그저 춤추는 터로서 그림의 시작과 끝이 있다.
문화에서 그림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이 놀이의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독창성이란 한 사람의 독창성을 우리가 감상한다기보다,
누구나의 독창성이 발산되어야함을 의미해야 한다.
그 독창성이 발산되고 수렴되는 각자의 터에서, 그 수많음에서
우월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의 고독과 저항과 계몽이 어떠한 형태(전시언어)로 간다면
그 面은 배움(이야기)을 갖는 하나의 色이지만,
平常의 대책없는 자유로부터 나오는 色은 무지개이다.
직업(화가)으로 인한 하나의 새로움은 결국 권력화 되지만,
널려있는 새로운 '너'의 흔적은 애정화 된다.
그야말로 한 사람은 거짓을 전함이고 萬人은 진실을 전함이다.
오직 '너'(이웃)와 '나'의 만남인 그림(못남)속에서도 충분한 진실이 있다.
平常의 자유는 집중(노력)된 시력을 압도한다.

'너'에게는 늘 공간이 있다.
그려갈 화면과 장식할 벽면은 비어있는 그대로도 하나의 이야기일 것이다.
공간을 채우려는 악몽에서 여유를 갖는 놀이의 힘으로서 그림이 있다.
한 화면에 얽매이기 보다는,
수없는 '너'와 '나'의 흔적에서 선택해가는 가능성으로서 壁(액자)이 있다.
그 공간이 소비되는,
그림의 의식 저편에는 명랑과 따스함과 생동하는 의지 밖에는 없다.
언어 이외의 언어, 그렇게 밖에 안되는 모양을 쫒는 기호,
흉내를 내는 더듬거림, 쏟아지거나 막힌 화면구조…,
이 모두는 우리에게 보장된 놀이(그림)이다.

충분한 낙서와 기호, 방법적으로는 일회성이 갖는
못남과 치졸, 유치와 어색함 등등은 그림의 宿命이며,
'너'와 '나'의 만남과 액자(벽)의 애정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많이 간 것은 많이 간 것이고,
가까이 있는 것부터 이야기 하자.
매번 그려지는 엉터리 흔적으로 충분히 웃어보자.


   
이름아이콘 강물
2010-01-28 09:36
그림은 약속된 언어에서 이탈된 '놀이'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캔버스앞에서 붓을 놓았을때
뭔가 부족한 느낌, 뭔가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다는 그 아쉬움을 그대로
나의 화면에서 묵인하고 싶으며  저는 그 약속된 언어의 이탈이라는게 젤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공감합니다.
   
이름아이콘 안광섭
2010-01-28 21:40
어떤 문구는 좀 딱딱하고 어떤 문구는 끄덕여지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많은 공감을 하는 글입니다
   
이름아이콘 푸른화살
2010-02-01 09:20
학문의 세계에선 진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지식이 필요하지만
예술의 세계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이 필요하기에 이해 할 필요없이 오직 느낄 뿐이라 생각합니다
맛있는 것을 느끼는 것에 배움이 필요없듯이....
많은 이들이 현학적인 표현으로 예술을 정의하지만
놀이라는 표현만큼 딱 부러진 표현은 없을겁니다
모든 예술은 감동할 수 있어야 되고
감동은 재미를 느끼는 것이고
재미는 놀이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즐길 수 없는 것은 예술을 가장한 지적 허영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는 우리 일요화가회회원님들이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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