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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요화가회

미 술 자 료

이   름 오민웅
작성일 2004-08-01 (일)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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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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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의학(44)터너 말년 그림과 우울증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쉐익스피어가 영국문학사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를 미술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영국의 위대한 풍경화가다. 그는 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여행을 했고 200권이 넘는 스켓치북과 19000점의 데생 그리고 300점이상의 유화를 남겼다. 빛과 불꽃의 화가라는 그는 빛과 대기를 주제로 숭고하고 장엄한 풍경화로 들라크로아를 비롯한 낭만파에 큰 영향을 끼쳤고, 또 모네의 그림처럼 빛의 변화 속에 대상의 형태가 사라지는 그림을 그려 최초의 인상파화가라는 말을 듣기도한다. 그의 생전에 그의 그림에 대한 많은 비평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사후 97년인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 터너 특별전이후 전세계적인 '터너 바람'이 인 겄을 보면, 그는 그후에도 늘 영감과 자극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할 수있다.
그의 화법은 대개 4시기로 나누어 볼 수있다.
1805년(30세)경 까지는 주로 수채물감으로 자연의 세밀한 관찰에 시종하였고, 그후 15년간은 이상화된 풍경화를 그린 로랭(Claude Lorraine1600-168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20년(45세)이후부터는 그의 그림에서 형태가 빛의 반사와 흐름에 용해되어, 심한 경우는 20세기의 추상화와 거의 비슷해보인다. 60대 초반에 들면 여기에 더하여 적赤과 황黃, 흑黑의 전율할 정도의 강럴한 색채로, 인간과 자연을 대비시켜 죽음, 고독, 허무, 패배, 공포, 파괴, 무력, 위기등을 상징하는 그림을 비관적pessimistic 분위기로 그려내었다. 특히 이 마지막 시기의 분위기는 문학적인 수사학修辭學의 소산이라기보다 그의 어려서부터 형성된 내적이고 체험적인 세계관의 표출이라고 할 수있다. 당시 터너를 끝까지 옹호한 미술평론가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유년시대를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고, 청년시대에는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벗이 없었으며, 장년기에는 세상를 떠들썩하게할 사랑도 없이, 그는 희망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터너는 가난한 가발장이(이발사?)인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어머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터너 24세에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5년후 사망한다. 동생의 불치병으로(터너 11세에 사망) 어머니의 중상이 심해지자 터너는 11세때 시골의 삼촌에게 보내져 거기서 처음으로 학교를 다니며 그림에 대단한 재능을 보인다. 그는 어머니의 용모와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하며, 워낙 수줍고, 비사교적이머, 비밀스러웠으며, 어머니의 사망후 더 괴팍해졌다고 한다. 또 유달리 큰 코에 대한 열등감으로 자화상은 17세와 23세경의 2개뱎에 없다. 그는 또 쉽게 흥분하고 때로는 갑자기 욕을 퍼붓기 때문에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20세연하인 프랑스 화가 들라크로아는 그를 평하기를 그는 말이 없고 조용하고 때로는 시무룩하며, 돈에 인색하고 눈매가 날카롭고 단정하게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였다. 23세에 기술된 성격을 보면 그는 그냥 평범하고 재미없는 젊은이이며, 그림외에는 관심도 없고 사회성도 없고 예민하다고 하였다. 또 믿음이 생길때까지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나 일단 가까워지면 명랑하고 즐겁고 잘 웃었다한다.
그러나 화가로서의 그는 명성과 부富를 대단히 일찍 얻었다. 11세에 벌써 날자와 자기서명이 든 데생을 발표했고, 17세에 왕립미술협회로 부터 Greater Silver Pallet상을 받는다. 19세에는 정신과의사 몬로의 후원으로 3년간 모사공부를 한다. 24세에 왕립아카데미 준회원, 27세에 정회원이되며, 32세에는 이곳의 원근법 교수가 된다.
그는 법적으로 독신으로 되어있으나 24세경 미망인 Sarah Danby와의 사이에 딸 둘을 얻는다(최근에는 Sarah가 아니고 Sarah의 조카이며 터너의가정부였던 Hannah Danby라는 설이 유력하다. 왜냐하면 터너는 유언에서 Hannah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딸들에게 어버지노릇은 햇다고 하나 아버지로서의 정은 없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터너에게는 좋은 후원자들이 많았었는데 그중 유력한 한사람인 Walter Fawkes가 터너 50세에 죽고, 4년후에는 아버지마저 사망하면서 그는 '사람이 달라졌다'고 할 정도로 비탄에 빠진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아들의 재능을 이해하고 어머니사후 자기의 일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들의 뒷바라지만을 한 분이었다.
58세에는 20세 연하인 미망인 Sophia Caroline Booth를 만나 죽을때까지 부부처럼 산다. 그러나 처음 1년 외에는 터너가 돈을 한푼도 내놓지않아 Booth부인이 저금한 돈과 유산으로 생활한다. 71세에 템즈강변에 산 집도 부인이 마련한 것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하였고 또 화가들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자가 된 뒤에도 인색한 것은 여전하였다.
60대 초반 1830년대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기사작위를 받는데 자기는 받지 못하자 실의에 빠진다. 당시 빅토리아여왕은 터너를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다한다. 1840년대 60대 중번에 들면서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며 이름을 바꾸고 은둔자처럼 자기를 숨기려한다. 또 여러곳에 팔려나갔던 자기의 그림을 강박적으로 사들이는데, 그러나 이들을 제대로 간수하지않고 썩도록 내버려둔다. 성격은 괴팍해지고 불안은 더 심해진다. 말년에 그가  주로 든 듬식은 럼酒와 우유였다고 한다. 때로는 이를 섞어서 하루 2quart(1quart는 6분의 1 갤런)씩 마셨고, 스케치갈때는 항상 진을 한병 들고 나갔다한다.
죽기 1년전부터 차츰 기력이 쇠하여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그는 1851년 12월 19일 템즈강을 바라보며 사망. 향년 76세. 그는 사후에 그의 작품을 위한 미술관 건립과 가난한 화가를 위한 연금기구의 설립을 희망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대한 화가였지만 그러나 터너의 일생은 그렇게 행복해보내지 않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환경과 이러한 한경에서 형성된 성격 탓인지 원만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것이 사회생활에서나 여자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50세 이후 유력한 후원자와 아버지의 사망, 기사작위 획득의 실패등은 그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이와 함께 어머니로 부터의 유전의 가능성과 그의 성격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60대 이후 자기 부정 내지 자기파괴및 학대등의 우울증에 빠진 것이 클림없어 보인다.
60세이후의 그림들을 보면 강열한 적赤과 황黃의 색채로 웅혼하고 장엄한 대자연을 그리고 있으나, 더해지는 흑黑색과 함께 그 주제主題는 항상 인간의 죽음, 비참, 허무등을 나타내고 있다.
참고문헌:서문당(33)터너, 터너展도록(1985 서울갤러리), Studio Edition(Turner 1990),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이주헌著 1.2권), http://ellensplace.net
(註: 참고 문헌중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는 아마 영국 쪽의 자료에서 터너를 너무 미화美化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림 설명: 수장水葬, 1842년 67세 캔버스에 유채, 87x86.5cm, 런던테이트갤러리. 아카데미 회원인 데이비드 윌키가 근동여행에서 돌아오는중 선상에서 사망하자 이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그린 것. 화면 중앙에서는 이제 곧 사체가 엄숙하게 바다 깊이 장사지내지려 하고 있다.  

추가: 낭만파 화가 내지 인상파 화가로서의 그는 다음 같은 말을 남긴다.
그는 언젠가 후배 화가에게 "자네 나이에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자네가 느낀 인상을 그려야한다는 것이네. "  이와 관련하여 자기가 그린 '눈보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알기 쉬운 그림을 그린게 아니라 그때의 그 경치가 어땠었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네"      
순간의 사각적 효과에 대하여 언젠가 배에 탔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흔들리는 돗대 꼭대기에 올라가 4시간 동안이나 몹씨 흔들리고 있었지만 내려올 생각을 않았어. 할 수만 있었다면 그 꼭대기에서 그때의 풍경를 그리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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