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요화가회

ㆍ이 름	김정미
ㆍ작성일	2002-05-18 (토)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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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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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짧았던 모델생활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난 곧잘 친구녀석의 미술학원에 따라가서 할 일없이 시간을 죽이곤 했다. 미술학원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54색 크레파스가 있었고 얇은 도화지만 쓰던 내게 두꺼운 스케치북은 언제나 나의 발길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다가 전학을 가게 되었고 미술학원에서의 기억도 이사짐꾸러미에 실려 낯설은 집 어딘가에 얹혀진 이후로 잊고 지냈다.
이후로 그림과의 인연은 중학교 때 5인방 친구들과 함께 다시 만나지게 되었다. 다섯명 중 세명은 미래의 미술학도 지망생이었고 나를 포함한 두명은 음악학도 지망생이었다. 우연히 미술선생님 심부름으로 학원에 들렀다가 미술시간에 이론으로만 배웠던 목탄이랑, 이젤, 화구통, 줄리앙, 아그리파 등에 매료되어 어릴적 버릇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와 나의 친구네 미술학원 따라다니기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그 당시 학원을 운영하시던 분은 현재 부산미술협회회원이시기도한 000선생님이셨는데, 무위도식하며 학원을 들락거리던 내가 보기에 딱하셨던지 친구들의 인물화 연습용 모델을 시키셨다. 그러던 중 그해 부산시교육청 미술실기대회가 해운대 기계공고에서 열리게 되었다. 게시판에 학교대표로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 명단이 붙었고 인쇄 잘못인지 미술학도 내친구들 이름 옆에 김정미라는 낯익은 이름이 함께 나붙어 있었다. 내가 어느부분에 참가하게 될까 하는 것은 관심밖이었고 일단 하루 왠종일 수업을 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작은 설레임마저 일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참가하는 부분은 구성도 풍경화도 인물화도 아닌 인물화 모델이었다. 황당함 그 자체였다. 미술선생님께 여쭈어 봤지만 이미 교육청에서 명단이 내려왔다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고 난생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소위 모델이 되어야 했다. 뒷 얘기를 통해 친구네 미술학원의 000선생님께서 이번대회에 중추역할을 맡으셔서 문하생들의 보다 나은 실력발휘(?)를 위해 나를 추천하셨다고 들었다. 친구들과 재미로 하던 모델이야 자유롭게 잡담도 나누고 긁고 싶은데도 긁고 보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볼 수 있었지만 실제는 영 아니었다.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동안 손발은 물론이고 시선, 숨쉬기까지도 신경 써야 하는데다가 내 모습 구석구석 내리꽂히던 예리하고 서늘한 눈길들이란 영락없이 고문 그 자체였다. 그래도 이왕하는 일 최선을 다하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모델이 마음에 안들어 잘못 그렸다는 한 남학생의 투덜거림 때문인지 그날 이후로 모델이라는 직업은 나에게는 고달픈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여하튼 처음이자 끝인 모델생활은 일주일 동안의 심한 감기몸살과 함께 막을 내리고 그림과의 인연은 직장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딜 때 만났던 어느 미술선생님 덕택에 일요화가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취미를 묻던 그 선생님의 질문에 지금의 취미는 영화보러 가기지만 미래에는 유화그리기가 될거라 했더니 지체없이 일요화가회를 소개해 주셨고 친절하게도 연락처까지 적어주셨다. 8여년전의 나의 작은 바램이 이제는 현실의 취미로 자리매김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렵게 쟁취한 나만의 정신공간이어서인지 캔버스에 묻어나는 기름냄새마저도 자그마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199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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