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요화가회

ㆍ이 름	최금종
ㆍ작성일	2002-09-09 (월) 15:20

ㆍ조회: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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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살고 싶은 마음
많은 생명속에서 나는 내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그림이란 아름다운 취미를 가지게 되었음을 더욱 감사하게 생각한다.
평소에 길을 가다가 가끔씩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화구를 둘러맨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때면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일면 조금은 시기어린(?)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였다.
미대생일까? 화가일까?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굴레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손전등 하나없이 내 몸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용탑선원에서 1430m의 돌많은 가야산 정상을 오르는 심정만큼 무거워짐을 느낀다.
일요화가회에 가입하여 스케치에 참석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부지런히, 마치 8월의 태양빛 아래서 개미가 마이산 돌탑에 오르듯이 그림을 배워 나갈 때면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이 행복한 감정은 외제 유명 오디오보다도, 12박 13일의 유럽여행보다도 새로 나온 신형 자가용을 가지는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8월에 떠오르는 동해의 찬란한 태양을 보는 것처럼 기쁜 것이다.
가끔 스케치를 마치고 선배화우님과 자리를 같이할 때면 어리고 여린 소견의 나는 많은 인생이야기와 그림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지난 여름, 번뇌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조금은 오랜 시간의 혼자하는 여행을 하면서 마주쳐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거의 술과 냄새나는 육고기와 시끄러운 음악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기는 고스톱이란 대중오락으로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썩어가는 육신을 보지 못하고 오직 육체적 감각적 쾌락과 향기로운 냄새에 젖어 있었다.
그들이 집을 떠날 때는 몇 개의 배낭속에 많은 음식들을 담아가지만 귀가길의 그들의 발걸음은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억센 족쇄에 채워져 있음을 느낀다.
가야산 정상에서 본 칠불봉.
그 뒤로 펼쳐진 초록의 물결, 바람이 몰고온 하얀 구름과 고추잠자리, 이렇듯 위엄있고 신선한 충격을 일으키는 대자연의 위용을 어린 소견과 번뇌에 물든 난 감히 캔버스에 담을 수 없어 머릿속에 그려둔다. 훗날 사심없는 마음으로 돌아와질 때 언제라도 달려가서 화폭에 담아보리라. 이제 무덥고 번뇌에 시달리던 여름은 가고 단풍잎 곱게 물드는 가을이 온다. 이 가을에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그런 곳에서 호젓하게 자리잡고 초가집 단풍나무 한 그루를 같이 그려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하얀 캔버스에 채우고자 한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은 시일내에 뜨겁게 울리는 영혼의 고동소리를 그릴 수 있으리라.
삼각형, 사각형도 좋지만 둥그런 원이 좋은 것은 내 얼굴이 둥글고 지구가 둥근 까닭도 있지만 어수선한 이 세상을 남과 부딪히지 않고 가만히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둥글게 살고 싶은 마음.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그림을 그리면서 부터인가보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이제 나만의 소중한 돌탑을 쌓아가리라.

이 글은 1990년 본회 회보(제8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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