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대왕(康憲大王, 世宗) 때의 일이다. 중국의 사신 김식(金湜)이 대 그림을 잘 그려 일세의 명화가로 알려졌는데 그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대 그림을 감상하고자 요청하였다. 이 시기 안견은 우리나라의 명화가로 곽희(郭熙)에 버금갈 만하였다. 중국 사람들도 종전부터 그의 신묘한 필치에 탄복한 터였다. 강헌대왕이 안견으로 하여금 있는 기교를 다하여 대 그림 여러 폭을 그리게 하여 이를 김식에게 보였다. 그러나 뜻밖에 김식은 “이 그림은 비록 기묘한 수법으로 그려졌으나 대나무가 아니라 갈대로다” 하고 평하였다.

강헌대왕은 원래 그림 그리는 격식을 아는 이였다. 원포(園圃)에 지시하여 대 한 그루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 너무 촘촘하게 달린 잎사귀를 솎아 좀 성기게 한 다음 이를 섬돌 위에 올려놓고 저녁 볕이 비쳐들 무렵 안견을 불러 그대로 그리게 하였다. 왕이 이 그림을 김식에게 보였더니 그가 보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이야말로 진짜 대이외다. 중국의 명화가들도 이 그림에 맞설 이가 드물 것이외다” 하고 탄복하였다.

야외스케치를 하면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보며 어느 정도 무엇을 생략하면 적당한 지를 생각케 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