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4월19일 23면(pdf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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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의 힘 <2> 부산일요화가회 ＇일요화가회 유래＇

영국의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경은 정치에서 은퇴한 뒤 ‘기분 전환으로서의 회화’라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회화는 철저한 기분 전환이다. 몸을 쇠진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그렇게 완전히 빨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장의 고민이나 미래의 어떤 위협이 있다해도 일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런 일들은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어진다’. 이렇듯 그림은 일상에 지친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처칠이 밝힌 그의 과거 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은 그림 그리기였다고 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휴일을 이용하여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려 보라고 권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윈스턴 처칠경은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풍경화는 일정 수준을 넘은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그림에 대한 글과 권유를 받아들여 사람들이 그림그리기를 시작하자는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이 바로 영국서 일어났던 ‘처칠회’였다. 이 처칠회를 신문과 방송사가 적극 후원함으로써 순조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이 그림 그리기 운동이 바다를 건너 유럽 대륙으로 파급되었다. 그러나 처칠회라는 명칭이 개인을 지나치게 부각한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이때 한 기자가 ‘일요화가회’라고 불러 그것이 효시가 되었고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웃 일본에서는 아직 처칠회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사상가 앙리 루소나 루이 비뱅 등도 이 일요화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3월 박석환 박광진 두 화가에 의해 아마추어 그림 동호인들을 위한 취미단체로 서울일요화가회가 창립됐다. 이후 부산을 비롯, 전국 각지서 지속적으로 조직돼, 현재 전국 23곳에서 일요화가회가 활동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부산일요화가회는 부산문화를 일구는 농부 역할을 조용하게 다하고 있다. 사진은 경남 김해시 진례면 송정마을서의 사생대회 모습.     부산일요화가회는 다양한 직업과 개성을 가진 남녀노소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공통점으로, 함께 어울려 삶과 자연을 화폭에 담는다. 아마추어 미술동호회인 부산일요화가회의 지향점은 ‘자연을 사랑하며 매월 2회 사생을 즐기는 부산시민의 모임’. 따라서 미술의 대중화와 미술인구 저변확대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967년 부산 화단의 1세대인 송혜수씨가 서울일요화가회 문우식(현 홍익대 교수) 지도교수의 권유를 받아 부산일요화가회의 창립을 주도했다. 송씨는 그해 3월 광복동 입구 샘다방에서 최한경 성백주 최오인 김성욱 정왕무 김석도씨 등과 발기인 모임을 가졌고, 초대 회장으로 당시 대선주조의 임원이었던 최한경씨가 추대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부산일요화가회는 올해로 37년째가 되는 긴 연륜을 자랑한다. 회원들은 자유롭게 들고 나지만 언제나 130여명은 유지하고 있다. 매월 1, 3주 일요일 야외스케치 때는 30~40명씩 참가하여 자연 속에서 색채와 교감한다. 창립 이후 지금까지 사생 나들이만도 739회에 이른다. 따라서 부산 근교는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어 나들이 장소를 정하는데 상당히 애로를 겪고 있다. 지난 1월 부산시청 전시실에서 열렸던 회원전 모습. 올해 회원으로 활동한 지 6년째가 된다는 최용집씨는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선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면서 “자연과 나만의 내밀한 시간을 사생을 통해 맛보는 기쁨은 비할 데가 없다”고 자랑한다. 회원들은 자영업자 교사 회사원 대학교수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연령도 20대 중반에서 80대까지 그 폭이 넓다. 이들은 사생대회에 나갈 때 가족들을 동행해 가족단위의 야외 나들이를 겸하기도 한다. 1년에 두 번 정도의 회원전을 가지며 나름대로 자신들의 미술작업을 정리한다. 지금까지 60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자격을 필요로 하거나 특정인을 위한 단체가 아닌 데 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부산 시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사생행사 때는 처음 참석하는 사람도 거리낌없이 회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부산일요화가회 유경렬 회장은 “그림 지도가 필요한 신입 회원은 두 분의 지도선생님이 친절하게 기초부터 찬찬히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20여년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재용씨는 “처음에는 유화 붓과 수채화 붓이 어떻게 다른지조차 구별하지 못했다”면서 “회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주고 초보자나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나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씨는 지금은 자신의 작품으로 그림엽서를 만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명함 대신 선물하기도 한다. 취미로 부산일요화가회에 참여했다가 전업작가로 진로를 바꾼 경우도 제법 많다. 김윤택 주신자 유춘열 김춘진 문상록씨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 이들은 이제 지역 화단에서 어엿한 작가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부산일요화가회를 지도했던 작가들은 부산 화단의 원로가 되었다. 우신출 임호 진병덕 이의주씨 등은 이미 작고했다. 또 중진인 신창호 안세홍씨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는 김봉진 윤종철씨가 지도를 맡고 있다. 지난 1983년 한국일요화가회의 주최로 경남 진주에서 전국 5개 일요화가회가 모여 합동스케치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이 행사는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그 지역 일요화가회가 주최하여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사생을 통한 만남의 축제인 이 대회도 벌써 20회째를 맞이했다. 참가 단체도 갈수록 늘어 지금은 20여곳에 이르며 참가 인원도 400명을 넘어선다. 올해 행사는 오는 5월 부산일요화가회 주최로 해운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부산일요화가회는 해외교류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한다. 1990년부터 이웃 일본 돗토리현 ‘요나고 처칠회’와 교류행사를 갖고 있다. 1991년 5월엔 해운대 동백섬에서 한일 합동사생대회를 열어 두 나라 미술 동호인들이 우정을 나눴다. 그해 가을께 일본 백화당 갤러리의 개관 기념전에 ‘요나고 처칠회’의 회원들과 함께 우정 출품한 적도 있다. 그 뒤 처칠회 쥬고쿠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번 부산행사에 ‘요나고 처칠회’와 ‘센다이 처칠회’가 참석할 예정.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했다는 회사원 김경미씨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일요화가회에 나온 지가 3년 정도 됐다”면서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직장생활도 지겹지 않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생을 위해 현장에 도착하면 지도교수에게 현장에 대한 역사적 의미나 구도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은 뒤 그림을 그린다. 대부분 유화를 하지만 수채화나 한국화 등을 하는 회원들도 제법 있다. 그림 그리기가 끝난 오후 4~5시쯤에 한곳에 모여서 그날 그린 회원들의 작품을 지도교수가 하나하나 품평한다. 46년간의 교단 생활을 정년으로 접고 지난 1998년부터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정훈택씨는 “노후의 취미활동으로 안성맞춤”이라면서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이젤을 펴놓고 그리는데, 그때가 훨씬 더 운치있고 재밌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림을 통해 세상과 자연과 소통하며 지역문화를 위한 작은 힘을 조금씩 축적해 나가고 있다. / 주진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