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요화가회

창작글과 음악

ㆍ이 름	홍종율
ㆍ작성일	2002-05-14 (화)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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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통해 보는 경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듣고 하면 살 맛이 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신문 방송을 통하여 접하는 소식들은 가뜩이나 답답한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듭니다. 우울한 안경을 통하여 보는 세상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세태 자체가 우울하고 각박한 세월인 것 같습니다. 허나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문을 닫으실 때에는 창문은 열어 두신다"고 우울한 요즘의 세태가 닫힌 문이라면 저는 차라리 창문을 통하여 세상을 보기로 합니다. 어쩌면 문에서 보는 경치보다 창을 통하여 보는 세상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으니까요. 저의 창을 통하여 보이는 풍경들은 이렇습니다. - 실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느낄 수 있는 풍경들입니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되어 하늘과 바다가 경계도 없이 뿌여스름한 공간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배라든지 바지선들의 음영이 조용한 물결에 일렁이고 있는 풍경은 안온하면서도 삶에 대한 포근한 희망같은 것을 안겨 줍니다. 해질무렵 서산 능선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해님이 모습을 사알짝 감추며 하늘에 뿌리는 잔광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혹 하늘에 둥실구름이라도 떠 있다면 그 구름의 윤곽선을 투과하는 태양광의 황금빛깔은 성화에서 보는 후광보다 더욱 아름답습니다. 한여름 작열하는 햇볕을 받으며 길따라 늘어선 미류나무들의 잎새들이 바람 한 점 없는 데도 수천 수만의 은빛조각들을 뿌리며 팔랑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낮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초등학생들의 명랑한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듯 합니다. 날카롭지 않은 두리뭉실한 우리네 산과 들 어디서나 가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억새가 가녀린 줄기 끝에 희고 보드라운 솜털을 이고 하늘거리고 있는 자태는, 하많은 사연들을 한마디 말 못한 채 언덕에 서서 멀어져 가는 사람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언제까지나 손수건을 흔들고 서 있는 소복한 여인을 연상시킵니다. 따뜻한 봄날 나즈막하고 볕 잘드는 언덕의 잔디밭에서 깍지벼게를 하고 - 물론 머리 위쪽으로는 이름 모르는 이의 무덤이 하나쯤 있겠지요- 누워 있으면 말할 수 없이 심신이 편안하고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내원암 안뜰의 토담을 따라 가꾸어진 화단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의 청순한 자태, 언젠가 해인사 가는 길에 함양이던가를 지나면서 보았던 보도위에 소복히 쌓였다가 바람이 불면 어지러이 흩날리던 은행잎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일요화가회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또 스케치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빡빡하고 변함없는 일상을 벗어나 창을 통하여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눈을 가지게 된 것이 일요화가회에 몸담고 있음으로 해서 연유하게 되었지요. 거기에다 오랜만에 - 해도 2주일이지요 - 가질 수 있는 정다운 화우들과의 만남이 더욱 스케치날을 기다리게 하는 요인이지요. 십년을 몇 번 보내온 지난 세월이 항상 그랬었고 남은 세월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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