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요화가회

ㆍ이 름	푸른화살
ㆍ작성일	2003-11-26 (수)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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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욕조에서 만난 여인

겨울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말기암환자의 거친 숨소리로
대지를 적시던 엊그제,
나는 영락공원 화장장에서 지인과 마지막 이승의 연을 끊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
갖가지 사연이 모인 거대한 슬픔의 욕조에 반쯤 몸을 담그고
은근히 애잔한 이별의 상념을 즐기고 있을 때
어떤 여인이 다가와 조용히 인사를 한다.
하얀 소복에 둘러싸여 겨우 얼굴만 보이는데 그마저 왼손에 쥔 하얀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 보이는 건 오직 화장 안 한 깨끗한 피부와 쌍꺼풀진 커다란 눈동자에 담긴 슬픔뿐이었다.
누구일까?
어디서 본 사람일까?
한 참을 생각해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빗줄기가 우울한 대기를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온통 검정색과 회색 일색인 군중들 속에
간간히 하얀 소복의 여인네들이 내지르는 절규가
회색 빛 슬픔을 난도질하는 한 쪽 벽면의 아래쪽엔 망자의 유골을 담을 용기들이
생전의 그들의 세속의 무게만큼 모양이 각각 인 체로
흰 국화로 둘러 쌓인 영정들과 나란히 줄을 맞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위로 줄지어 늘어선 cc화면속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망자들의 이름석자가
날 잊지말라고 발악하듯이 안간힘으로 명멸하다가
수골중이란 꼬리표를 떼는 순간
줄 끊긴 연이 되어 남은 자들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갔다.
한 줄기 피어오르는 향이
망자의 기억과 함께 사라지는데
혹시나 했는데 맞군요 하던 습기 가득한 그녀의 한 마디가
남은 자의 사치스런 슬픔을 걷어 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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